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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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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구진(穴口鎭)은 신라 하대에 현재의 강화도에 설치된 군진이다. 신라는 9세기에 들어 변경 지역의 요충지에 군사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이를 요새화하였다. 844년(문성왕 6) 8월 강화도에 설치된 혈구진은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으며, 초대 장관은 진두(鎭頭)였다.

신라에 편입된 당시 강화도 일대는 해구군 또는 혈구진으로 불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국시대에는 강화도를 혈구도(穴口島)라고도 하였다.

한편 청해진(淸海鎭)은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의 요청에 따라 현재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장도에 설치된 군진이다. 이후 문성왕 때에는 서해 방면의 요충지인 강화도에도 혈구진이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초 강화도 일대는 열구현(冽口縣)으로 불렸다. 몽골의 침입으로 고종 때 고려의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면서 강화(江華)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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