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경국대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다른 뜻에 대해서는 경국대전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72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경국대전 제1권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경국대전(經國大典)은 조선시대의 기본적인 법률 기반을 마련한 법전이다.[1] 세조 시기 작성되기 시작하여 성종 1년인 1470년 처음으로 반포되었다.[2] 이후 여러 차례 보완되어 1485년(성종 16년) 최종적으로 확정되었고[2], 이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보다 보완이 필요해 진 부분은 1746년의 《속대전[3], 1865년의 《대전회통[4]과 같이 증보하였다.

배경

[편집]

고려 시기 이미 당률송형통을 바탕으로 한 고려율이 있었고[5] 고려 말기에 대명률이 도입되었으나[6] 고려율은 일률적으로 통일된 성문법전이 아니라 여러 시기에 걸쳐 반포된 법률들의 집합체였다.[7]

조선의 건국으로 성리학의 이상을 실현하려 하였던 신진사대부[8]주례》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교적 이상 정치를 법제에 담고자 하였다. 신진사대부에게 법이란 옛제도에 근거하여 그 근간은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하였고 시행하여도 백성에게 민폐가 일어나지 않아야 하였으며 백성들이 믿고 따를 수 있어 함부로 고치거나 없애지 않는 것이어야 하였다.[9] 물론 조선은 왕을 정점으로한 신분제 사회로서 법률 역시 강상죄와 같은 신분에 기반한 법령을 포함하는 것이었으나[10] 전제군주제 아래에서 성문법의 형성은 법치주의를 주장할 근거를 마련하여 보다 현실적인 해석과 다양한 판례 수립의 길을 여는 효과가 있었다.[11]

1394년 정도전이《조선경국전》을 저술하여[12] 조선의 성리학적 통치체계의 대강을 확립하였다.[13] 1397년 태조는 《조선경국전》을 참고하여 《경제육전》을 반포하였다.[7] 《경제육전》은 육조의 관할 업무를 명시하고 고려 우왕 이후 시행되고 있는 법률을 정비하여 수록한 법전으로[7] 별다른 보완 없이 시행 법률을 나열한 소박한 것이었으나 국가의 통치와 운영의 실무에서 두루 쓰였다.[14] 그러나 이두와 방언히 섞여 쓰여있는 점이나 통일된 체계가 없는 점과 같이 법전으로서 미비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태종 시기의 《경제육전속전》, 세종의 《신속육전》, 《신찬경제속육전》과 같은 후속 법전들이 제작되었다.[15]

간행

[편집]

세조찬위로 즉위한 세조는 자신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기존의 법률 체계를 일원화한 통일된 법전 수립이 필요하였다.[16] 세조는 육전상정소를 설립하고 최항, 김국광, 한계희, 노사신, 강희맹, 임원준, 홍응, 성임, 서거정 등에게 법률 편찬을 명하였다. 1466년 법전의 1차 편찬이 끝났으나 세조의 사망 시기까지도 완성되지 않았다.[17]

《경국대전》의 보완 작업은 예종 시기에도 계속되었고 성종이 즉위 뒤인 1470년에야 완성되어 반포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계속하여 보완 작업이 진행되어 다섯 차례의 개정을 거쳤고 1485년 더 이상 개정하지 않기로 한 최종 법전이 반포되었다.[17]

편제

[편집]
경국대전 제1권의 내용

《경국대전》은 무엇보다 유교적 신분질서에 부합하고자 하는 법전이다. 《경제육전》의 예에 따라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순서로 서술되었고 이전의 첫 부분엔 각 사대부내명부[18], 외명부[19] 등의 품계가 규정되었다. 이 외에도 지방의 조직과 관직, 문신과 무신의 임용과 같은 인사 등이 〈이전〉의 내용이다. 국가 경제의 근간이라 할 토지, 인구, 창고, 조운, 회계, 관리의 녹봉 등은 〈호전〉에, 왕실의 의례나 외교, 교육, 왕실 친족의 관리 등은 〈예전〉에, 각종 군역과 군사 제도에 대해서는 〈병전〉에, 형사 사건의 재판과 대명률을 준용하는 처벌에 대해서는 〈형전〉에, 도로와 교량, 궁궐과 관청의 관리 역참제도의 운용 등은 〈공전〉에 수록하였다.[2]

조선은 별도의 민사소송 개념이 없었으나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법률을 적용한 판례를 남겼다. 주로 상속, 부동산이나 노비의 소유권, 채권 채무 등이 대상이었고 순전한 민사소송이라기 보다는 잘잘못을 따져 형사적 책임을 묻고 피해를 배상토록 하는 방식이었다.[20]

변화

[편집]

《경국대전》의 집필자들은 만세불변의 법을 원하였으나 조선은 5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존속한 국가였고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 사회가 크게 변화하면서 법률적 보완이 필요하게 되었다. 영조 시기인 1746년 《속대전》이 간행되었고[3] 고종 시기인 1865년 《대전회통[4]이 다시 간행되었다.

조선 시기 내내 모든 법률의 근간이었던 《경국대전》은 1894년 갑오경장을 맞아 대부분 사문화되었다. 새로운 통치체제인 군국기무처는 중앙 행정부서와 지방 행정을 개편하고[21] 행정과 사법을 분리하였다.[22]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대한제국국제를 반포하여 황제를 절대군주로 하는 새로운 법률 체계를 도입하게 되지만[23] 이미 열강내정간섭이 노골화되고 있었다.[24]

문화재 지정

[편집]
  • 경국대전 권3 - 보물 제1521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2007년 7월 13일 지정
  • 경국대전 권3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66호, 서울 서초구 개인 소장, 2003년 9월 5일 지정
  • 경국대전 -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72호, 서울 강남구 개인 소장, 2018년 8월 9일 폐기

같이 보기

[편집]

참고 문헌 및 링크

[편집]

각주

[편집]
  1. 경국대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1 2 3 경국대전 - 조선 시대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된 만세성법(萬世成法), 한국사연대기, 우리역사넷
  3. 1 2 속대전, 한국사연대기, 우리역사넷
  4. 1 2 대전회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고려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 대명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1 2 3 태조대의≪경제육전≫, 신편한국사, 우리역사넷
  8. 도현철, 조선건국기 성리학 지식인의 네트워크와 개혁사상, 역사학보, 2018년
  9. 법사상, 신편한국사, 우리역사넷
  10. 강상죄(綱常罪), 실록위키
  11. 이재룡, 조선왕조 법제도에서의 국가관, 사회사상과 문화, 2004년
  12.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여 바치다, 태조실록5권, 태조 3년 5월 30일, 조선왕조실록
  13. 이종수, 鄭道傳 朝鮮經國典 法治思想 分析, 퇴계학논집, 2018년
  14. 경제육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5. 속육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6. 정성식,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성립배경과 체제, 동양문화연구, 2013년
  17. 1 2 경국대전(經國大典), 실록위키
  18. 내명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 외명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 우병창, 조선시대 민사소송제도, 법학논총, 2016년
  21. 정치·행정제도의 개혁, 신편한국사, 우리역사넷
  22. 사법제도의 개혁, 신편한국사, 우리역사넷
  23. 대한제국국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4. 대한제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